사람은 환경에 지배된다고 말 할 수 있을 정도로 사람이 나고 자란 환경은 세계관과 문화를 결정짓기도 합니다.
지구에는 많은 것이 공존합니다. 땅과 바다가 있고, 숨 쉴 수 있는 대기가 있고, 그곳에 살아가는 동식물들이 있습니다.
지질공원(Geopark)은 지구에 살아가는 사람과 동식물의 터전이 되는 지질과 경관(지형)을 보존하고자 만든 제도입니다. 환경 뿐만 아니라, 그곳에 살아가는 동물과 식물, 그리고 그 환경을 바탕으로 인간이 영위한 모든 역사, 문화를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인도네시아에는 유네스코의 인증을 받은 지질공원이 무려 6개나 있습니다.
우리나라와는 전혀 다른 지형, 생태계, 문화 구조를 지닌 인도네시아의 다양성을 가장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여행 방법으로 지질공원 탐험을 추천합니다.
1. 북부 수마트라의 또바 칼데라 호수 (Toba Caldera, North Sumatera)
수마트라 북부에 위치한 또바 칼데라 호수는 가장 최근에 추가된 유네스코 세계 지질공원입니다.
호수를 둘러싸고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어깨동무한 거대한 언덕이 그리는 대자연의 파노라마, 호수라 하기엔 너무나 거대한 또바호수. 이 곳은 그 어떤 비경을 묘사하는 형용사를 모두 동원해도 단어가 부족한 곳입니다.
또바호수 안에 위치한 사모시르 섬에 가면 이 호수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생생한 영상을 통해 그 기원을 볼 수 있는 박물관이 있습니다.
또바호수는 7만4,000년 전 화산폭발로 형성되었는데 분화 당시 화산재가 성층권까지 올라가 퍼졌고 세계 평균기온을 1.1도 떨어뜨렸다고 합니다. 그 결과로 형성된 지형이라 인간이 상상하기 힘든 크기의 거대한 폭포와 깊은 계곡들을 만날 수 있죠.
2. 방까 블리뚱 제도의 블리똥 (Belitong, Bangka Belitung Islands)
거인이 살던 곳인가 싶을 정도로 집채 크기만한 화강암 바위들이 듬성듬성 놓인 방까-블리뚱 제도의 풍경은 신비로움 그 자체입니다.
에메랄드 바다와 맹그로브 숲으로 이뤄진 블리똥 지질공원의 면적은 약 4,800 평방킬로미터로, 약 566종의 식물과 약 105종의 동물이 서식하는 생물 다양성의 보물창고입니다.
이 지질공원의 백미는 백사장 주위에 바다 소나무가 우뚝 서 있는 주루 세브랑(Juru Sebrang)입니다. 맹그로브 숲 속에서 전통 방식으로 고기를 잡는 낚시꾼들도 만날 수 있습니다. 뜨롱(Terong) 마을을 방문하면 ‘거인의 섬’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렌즈에 담을 수 있습니다. 지질공원은 정부가 아닌, 지역 사람들이 주도하여 보존하고 여행 일정을 짜고 운영하기 때문에 단순 관광지가 아닌,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삶을 가꾸어 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소중한 공간입니다.
방까(Bangka)는 산스크리트어로 "주석"을 의미하는 wangka(वन्च, 'vanca')라는 단어에서 파생되었습니다. 블리뚱(Belitung)은 네덜란드어로 검은 운석을 의미하는 빌리토나이트(Billitonite)에서 파생되었습니다.
3. 서부 자바의 찔레뚜 (Ciletuh, West Java)
우리에겐 생소한 이름이지만, 현지인들이 주말 여행명소로 즐겨찾는 수까부미(Sukabumi)는 자카르타에서 남쪽으로 약 100킬로미터 떨어진 도시입니다. 게데(Gede) 산 남쪽 기슭에 위치해 있어 계절의 다양한 흐름을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찔레뚜 지질공원이 위치한 수카부미로 자동차 여행을 계획하신다면 꼭 들러야 할 명소를 소개할게요.
빽빽한 단풍나무로 둘러싸인 뿐짝 더마(Puncak Derma)를 따라 아침 트래킹을 시작합니다. 현지어로는 쭈룩 도그도그(Curug Dogdog)라 불리는 폭포도 구경하구요. 점심 즈음에는 붉은 고구마를 넣어 반죽한 면으로 만들어 은은한 보라색이 감도는 쌀국수인 나시 우둑 웅구(nasi uduk ungu)라 불리는 서부 자바 전통 요리를 맛보세요. 쌀국수 말고도 전통 요리집이 많으니 쭉 한 번 둘러 보시구요. 맛있는 음식으로 배를 채우셨다면, 노을 맛집인 빨랑빵(Palangpang) 해변도 꼭 들러주세요!
4. 세우산, 족자카르타 (Mount Sewu, Yogyakarta)
족자카르타에 위치한 세우 산은 에일리언의 이빨 처럼 뾰족하고 험악한 석회암이 날것 그대로 지대를 메우고 있어 우주에 온 기분마저 듭니다.
현지어로 구눙 세우(Gunung Sewu)라고 불리는 이 명소에서는 이 지대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또 이 지리적 환경에 응전하며 마을 사람들이 어떤 문화를 꽃피웠는지 지질학, 문화인류학 등 자연과 사람, 사회의 연결고리를 직접 눈으로 관찰하며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구눙 세우 에딸라스(Gunung Seu Etalase)라는 곳을 방문하면 다양한 전시물과 안내 표지판이 있어 개별 여행자들도 쉽게 여행 할 수 있습니다.
5. 발리 바뚜르 산 (Mount Batur, Bali)
유네스코 지질공원으로 선정된 바뚜르 산을 트레킹하며 색다른 발리 여행을 즐겨보세요. 산 정상에 오르면 발리 섬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 보입니다. 1,717미터 높이의 정상에서 펼처지는 아름다운 풍경은 탄식에 가까운 감탄을 절로 자아내죠.
지질공원의 넓이는 약 370.5 평방 킬로미터로, 장엄한 산세와 계곡의 모습에 첫눈에 압도당하게 됩니다. 빠융(Payung) 언덕과 바뚜르(Batur) 호수를 여행하며 대자연의 경이로운 모습에 할 말을 잃습니다. 화산분화의 흔적인 칼데라 암벽이 파노라마를 이루는 바뚜르는 야생 동식물의 천국이며, 발리인들에게는 영적 성지로 불립니다.
유네스코와 지역의 정부, 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쳐 지속 가능한 관광과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 지역 경제에 큰 보탬이 되어왔습니다.
"학교에서 지질공원으로”라는 슬로건 처럼 바뚜르 지질공원은 교실 안에서 그림책과 비디오로 배우는 자연이 아닌, 직접 눈으로 보고 만지고 냄새를 맡는 자연학교가 되어 주었습니다.
바뚜르 유네스코 세계 지질공원 박물관(Batur UNESCO Global Geopark Museum)을 방문하면 생생한 예시를 통해 어려운 지질학과 생물학을 지루하지 않게 공부할 수 있으니 꼭 한번 들러보세요!
6. 린자니 산, 누사 뜽가라 서부 (Mount Rinjani, West Nusa Tenggara)
롬복 섬 북쪽에 우뚝 솟은 린자니 산은 2018년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높이는 약 3,726미터로 인도네시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입니다.
린자니 산의 인기 명소는 이름도 무시무시한 불의 고리(Ring of Fire)입니다. 현지인들에게 이 곳은 영적인 의미를 지닌 곳입니다. 이 세상이 아닌 것 같은 웅장한 명소를 탐험하면서 이 곳에 담긴 전설과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린자니를 더욱 깊게 만나보고 싶으신 분들은 분화구 호수인 셈발룬 라왕(Sembalun Lawang), 슨당 길(Sendang Gile), 띠우 끌렙(Tiu Kelep) 폭포 트레킹을 추천드립니다.
린자니 산을 제대로 탐험하려면 적어도 3일은 걸립니다. 조금은 고단한 일정이지만, 머리 바로 위로 별이 쏟아지는 밤, 코끝이 찡해지는 바람결, 천국의 계단이라 부르는 황홀한 성운층 등 대자연과의 신비로운 조우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몸은 조금 고되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인도네시아의 유네스코 세계 지질공원을 다녀갔습니다. 자연의 경이로움과 신비를 오감으로 경험하며 떠나는 탐험여행이 가능하기 때문일텐데요. 이유가 무엇이든, 이곳을 다녀간 누구라도 세상과 자신에 대한 가치관이 크게 흔들리는 ‘진실의 순간’을 만나게 됩니다.
지질공원 탐험은 대부분 외부활동이지만 늘 CHSE(청결, 건강, 안전 및 환경 지속 가능성) 규정을 엄격히 지켜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단어가 조금 거창할 뿐 늘 우리가 하던 것들이에요. 손을 꼼꼼하게 씻고, 늘 마스크를 착용하고,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기! 어렵지 않아요~